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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복음 13] 눅 2:40-52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기독교_ 기독교/누가복음 2023. 6. 12.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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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3] 눅 2:40-52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

    눅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 41 그의 부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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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 41 그의 부모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더니 // 42 예수께서 열두 살 되었을 때에 그들이 이 절기의 관례를 따라 올라갔다가 // 43 그 날들을 마치고 돌아갈 때에 아이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무셨더라 그 부모는 이를 알지 못하고 // 44 동행 중에 있는 줄로 생각하고 하룻길을 간 후 친족과 아는 자 중에서 찾되 // 45 만나지 못하매 찾으면서 예루살렘에 돌아갔더니 // 46 사흘 후에 성전에서 만난즉 그가 선생들 중에 앉으사 그들에게 듣기도 하시며 묻기도 하시니 // 47 듣는 자가 다 그 지혜와 대답을 놀랍게 여기더라 // 48 그의 부모가 보고 놀라며 그의 어머니는 이르되 아이야 어찌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하였느냐 보라 네 아버지와 내가 근심하여 너를 찾았노라 // 49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나를 찾으셨나이까 내가 내 아버지 집에 있어야 될 줄을 알지 못하셨나이까 하시니 // 50 그 부모가 그가 하신 말씀을 깨닫지 못하더라 // 51 예수께서 함께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그 어머니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두니라 // 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1.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 (신성)

    예수님은 하나님입니다. 바울은 빌립보에 보낸 편지를 통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말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 말하고 있습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안식하던 가운데 아담의 죄를 덮어주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혀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안식일에 쉬라 말씀하신 하나님은 안식하던 중에 일을 했습니다. 예수님도 모든 사람들이 쉬는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는 일을 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말씀하였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 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이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서려 한다며 예수님을 죽이려 했습니다. "요 5: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 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 18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사실 예수님은 안식일만 아니라 다른 날에도 많은 이적과 표적을 보여주었습니다. 앞 못 보는 자의 눈을 보게 하고, 걷지 못하는 자의 다리를 걷게 하였으며, 헤아릴 수 없을 만큼의 많은 질병을 고쳐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물 위를 걷고, 오병이어의 기적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는 능력 등 자연과 만물을 다스리는 모습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예수님보다 적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요 7:31 무리 중의 많은 사람이 예수를 믿고 말하되 그리스도께서 오실지라도 그 행하실 표적이 이 사람이 행한 것보다 더 많으랴 하니 // 32 예수에 대하여 무리가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아랫사람들을 보내니 // 3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조금 더 있다가 나를 보내신 이에게로 돌아가겠노라"

    예수님은 기적과 표적만 아니라 가르침을 통해서도 자신의 하나님 됨을 사람들에게 알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 안에 하나님이 계심을 깨달으라 전하였습니다. "요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 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 39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고자 하였으나 그 손에서 벗어나 나가시니라"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 계신 것을 믿으라 말하였습니다. "요 14:10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 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예수님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하나님을 믿는 것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계속해서 이 사실을 전함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의 하나님 됨을 알게 하였습니다. "요 12:44 예수께서 외쳐 이르시되 나를 믿는 자는 나를 믿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며 // 45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 // 46 나는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무릇 나를 믿는 자로 어둠에 거하지 않게 하려 함이로라 // 47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아니할지라도 내가 그를 심판하지 아니하노라 내가 온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함이 아니요 세상을 구원하려 함이로라 // 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 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내가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 50 나는 그의 명령이 영생인 줄 아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르는 것은 내 아버지께서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니라 하시니라"

    2. 하나님으로 오신 예수님을 거부한 이유

    예수님은 기적과 표적 그리고 가르침을 통해 자신의 하나님 됨을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못 했습니다. 여기에는 크게 다섯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던 신의 모습들

     

    첫째, 예수님의 외모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내산으로 인도한 하나님은 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빽빽한 구름 뒤에 숨어 이스라엘 백성들을 만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간다는 사실만으로 옷을 빨고 성결한 상태가 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크고 광대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사람의 모형과 형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이사야 53장에 묘사된 외모를 살펴보면 예수님은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어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다 말하고 있습니다. "사 53:1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냐 여호와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느냐 //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따라서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못 했습니다. 예수님의 외모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의 이미지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가족들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서른살이 될 때까지 나사렛에 살았습니다. 그 후엔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갈릴리로 가서 자신의 그리스도 됨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예수님이 행하는 기적과 표적 그리고 가르침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못 했습니다. 나사렛은 갈릴리 남부에 속한 곳으로 갈릴리 사람들은 중에는 예수님의 가족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목수 였던 예수님의 아버지와,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예수님의 형제였던 야고보, 요셉, 시몬과 유다 그리고 그 누이들을 알고 있단 이유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마 13:55 이는 그 목수의 아들이 아니냐 그 어머니는 마리아, 그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 하지 않느냐 // 56 그 누이들은 다 우리와 함께 있지 아니하냐 그런즉 이 사람의 이 모든 것이 어디서 났느냐 하고 // 57 예수를 배척한지라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선지자가 자기 고향과 자기 집 외에서는 존경을 받지 않음이 없느니라 하시고 // 58 그들이 믿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거기서 많은 능력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요 6: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남들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예수님을 지켜본 예수님의 친족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이라 말하는 예수님이 미쳤다 생각했습니다.

    "막 3:20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이므로 식사할 겨를도 없는지라 // 21 예수의 친족들이 듣고 그를 붙들려 나오니 이는 그가 미쳤다 함일러라"

    셋째, 예수님의 육체적 한계 때문입니다. 유대를 떠나 갈릴리로 가던 예수님은 사마리아를 통과하며 피곤함을 느꼈습니다. "요 4: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 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또한 배가 고플 땐 시장함도 느꼈습니다. "마 21: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십자가에선 목 마르다 말씀하였고 "요 19:28 그 후에 예수께서 모든 일이 이미 이루어진 줄 아시고 성경을 응하게 하려 하사 이르시되 내가 목마르다 하시니" 창으로 옆구리를 찔렸을 땐 우리와 같이 물과 피가 쏟아졌습니다. "요 19:34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나사로의 죽음으로 슬퍼하는 자를 보았을 땐 심령에 비통함을 느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요 11:33 예수께서 그가 우는 것과 또 함께 온 유대인들이 우는 것을 보시고 심령에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사 // 34 이르시되 그를 어디 두었느냐 이르되 주여 와서 보옵소서 하니 // 35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큰 고통과 치욕의 십자가를 앞두곤 우리와 같이 피할 길을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마 26:26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 38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 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40 제자들에게 오사 그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간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지 않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단지 많은 사람 중 조금 더 뛰어난 사람이라 생각했습니다.

     

    넷째, 예수님의 행동 때문입니다. 평소 예수님은 세례자 요한과 달리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긴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마 11:18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아니하매 그들이 말하기를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 19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또한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였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세리와 죄인을 멀리했기에 예수님이 그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눅 15: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더욱이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에 큰 불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식사 전에 손을 씻지 않았고 "눅 11: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이삭을 잘라 먹었기 때문입니다. "마 12:1 그 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 // 2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은 고사하고 모법적인 유대인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이 행동 하나 하나가 눈에 거슬렸고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으로 죄인으로 몰았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의 십자가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음에도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당시에 십자가는 로마가 가진 가장 강력한 처벌 방법으로 나무로 만든 십자가 형틀에 사람을 매달아 죽이는 방법입니다. 로마에 속한 나라와 백성들은 모두 이 처형을 두려워 했습니다. 십자가란 말만 해도 입을 씻을 정도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십자가를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의 두려움과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것이라 말했습니다."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러한 이해 속에 구약은 나무에 달려 저주 받은 자의 모습이 계속해서 소개합니다. 요셉이 꿈을 해석해준 떡 맡은 관원이 나무에 달려 죽었고, "창 40: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아이 성 왕도 나무에 매달았으며, "수 8:28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 29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 질 때에 명령하여 그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가나안 다섯 왕 곧 예루살렘 왕과 헤브론 왕과 야르뭇 왕과 라기스 왕과 에글론 왕을 나무에 매달았습니다. "26 그 후에 여호수아가 그 왕들을 쳐죽여 다섯 나무에 매달고 저녁까지 나무에 달린 채로 두었다가 // 27 해 질 때에 여호수아가 명령하매 그들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들이 숨었던 굴 안에 던지고 굴 어귀를 큰 돌로 막았더니 오늘까지 그대로 있더라" 뿐만 아니라 머리털이 많기로 유명한 압살롬도 나무에 머리가 걸러 죽음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삼하 18:9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 10 한 사람이 보고 요압에게 알려 이르되 내가 보니 압살롬이 상수리나무에 달렸더이다 하니 // 11 요압이 그 알린 사람에게 이르되 네가 보고 어찌하여 당장에 쳐서 땅에 떨어뜨리지 아니하였느냐 내가 네게 은 열 개와 띠 하나를 주었으리라 하는지라" 이러한 저주의 모습을 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자가형은 고통스러운 죽음만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음 이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십자가의 예수님이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고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 표현했습니다. "고전 1: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따라서 유대인들에게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하나님이 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그저 저주 받아 죽은 한 사람으로만 여겨졌습니다.

    3.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이 처럼 사람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도저히 부인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였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열두 제자만 아니라 오백여명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을 부인하고 교회를 박해하던 바울에게도 모습을 보이셨습니다. "고전 15: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 5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 6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 7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 8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예수님을 중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교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교회는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치유와 회복를 먼저 누렸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많은 표적과 기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부근의 수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모여들었습니다.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들이 다 나음을 얻었습니다. "행 5: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부활한 예수님에 대한 증언과 교회를 통해 나타나는 능력은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님 그리고 성령을 수직적 관계로 이해하던 자들이 하나님과 예수님을 동일한 관계로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이해가 바른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하지만 이때 영과 육에 선과 악을 부여하는 영지주의의 등장으로 교회는 큰 위기에 빠졌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만 인정하고 사람으로 바라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영으로만 우리에게 왔고 육으로는 오지 않았다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만 여기고 사람으로 보지 않는 사상에 대해 교회는 매우 단호한 입장을 보여 줬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자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이를 시인하지 않는자가 적그리스도라 말했습니다. "요 1서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 2 이로써 너희가 하나님의 영을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지금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생각해 교회가 되었지만 예수님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는 자는 교회의 적 곧 적그리스도가 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여기지 않는 것도 문제이고 예수님을 사람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도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며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죄 없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

    누가는 예수님이 하나님이며 사람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한쪽으로 기우는 시소처럼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누가는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사람 됨을 바르게 전하기 위해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기록하였습니다. 물론 마태도 예수님의 어린시절을 기록하였지만 누가는 다른 어떤 복음서보다 예수님의 어린시절을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베일에 쌓여 있던 공생애 이전의 삶을 성장의 관점으로 예수님을 소개하였습니다.

    "눅 2: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눅 2:52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누가에게 예수님은 100% 하나님이며, 100% 사람이었습니다. 50% 하나님이며, 50%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완벽하게 하나님이며, 완벽하게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의 구원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사람이란 존재는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 했습니다. 때문에 사람 중에 구원에 이르거나 구원에 이르게 할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만 우리의 구원이 됩니다. 또한 사람의 죄값은 사람이 지불해야 합니다. 짐승의 피나 기름은 죄를 기억나게 하는 기능을 할 뿐 죄를 없애지는 못 합니다. 우리의 죄를 없애기 위해서는 우리 중 하나가 죄를 지불할 제물이 되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일을 위해 우리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직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예수님은 하나님이자 사람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완벽한 하나님이며 동시에 완벽한 사람이란 사실은 놀라운 신비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구원 역시 놀라운 신비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람이란 존재입니다. 하나님과 달리 죄의 유혹에서 벗어날 수 없고 언제나 죄 가운데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이런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겨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사람이었던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되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전까지는 사람으로 살던 우리가 이제는 하나님 안에 살아가는 자가 된 것입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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