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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복음 12] 눅 2:25-40 시므온과 안나의 고백
    기독교_ 기독교/누가복음 2023. 6. 12.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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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2] 눅 2:25-40 시므온과 안나의 고백

    눅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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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25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 26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 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 28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 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 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 39 주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마치고 갈릴리로 돌아가 본 동네 나사렛에 이르니라 // 40 아기가 자라며 강하여지고 지혜가 충만하며 하나님의 은혜가 그의 위에 있더라

    1. 죽기 위한 기다림

    길을 찾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것입니다. 자신의 위치를 먼저 확인하고 자신이 가야할 곳을 찾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크고 정확한 지도가 있어도 원하는 목적지에 이를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자신의 위치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향해 나아가는 믿음의 여정도 우리의 위치를 아는 일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라는 정확한 목적지를 알고 있어도 우리의 위치를 모른다면 결코 그곳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천지와 만물을 창조했습니다. 아담은 천지와 만물 가운데 에덴동산에 살았습니다. 에덴동산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창조하신 하나님의 안식 가운데 운영되는 곳이었습니다. 아담은 그곳에서 기쁨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그의 아내와 함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하나님의 뜻 밖으로 뛰쳐 나갔습니다. 하나님의 안식이 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을 위해 가죽 옷을 만드는 일을 해야 했습니다. 아담에게 가죽옷이 주어진 날 아담은 에덴 동산 밖으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공간에 하나님의 뜻을 어긴 아담은 머물 자격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아담은 에덴동산 밖으로 쫓겨나 이전과 다른 삶을 살아야 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원하는 것들을 원하는대로 먹을 수 있던 아담은 에덴동산 밖에서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영생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던 아담은 에덴동산 밖에서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먹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죽음 없는 삶을 살던 아담은 에덴동산 밖에서 흙으로 지음 받은 것처럼 흙으로 돌아가 죽을 수 밖에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에덴동산 밖에서 자신의 생명을 위해 수고하고 땀 흘려 살아가지만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솔로몬은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모든 일을 연구한 후 우리의 삶은 괴로운 것이라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인생들에게서 주사 수고하는 삶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전 1:12 나 전도자는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이 되어 // 13 마음을 다하며 지혜를 써서 하늘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연구하며 살핀즉 이는 괴로운 것이니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게 하신 것이라 // 14 내가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 15 구부러진 것도 곧게 할 수 없고 모자란 것도 셀 수 없도다"

    결국 하나님 나라로 향하는 우리의 위치는 쫓겨난 땅에서 수고하는 삶입니다. 하루의 생명을 위해 수고하고 땀흘려 노력하지만 결국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해 모두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사실을 외면하며 살고 있습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죽지 않은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자신은 죽음과 상관 없는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백화점의 화려함에 속아 그 속에 있는 자신도 화려하다 생각하는 착각처럼 살아있는 것만 눈 앞에 두는 세상에서 자신도 영원히 살 것이라 착각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 나라에 이를 수 없습니다. 지도보다 정교하고 정밀한 하나님의 말씀을 두 손에 들고 있어도 자신이 선 곳을 몰라 영원히 길을 헤매다 흙으로 돌아갑니다.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에 지식에 이를 수 없습니다.

    "딤후 3:6 그들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 가지 욕심에 끌린 바 되어 // 7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

    성령은 시므온이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 죽지 않을 것이라 말해주었습니다. 죽고 싶어도 그리스도로를 만나야만 죽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시므온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역할과 자신이 살고 있는 땅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습니다. 그리스도를 만나 더 풍요롭고 나은 삶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지금 선 땅은 영원한 곳이 아니며 그리스도를 통해 나가야 할 곳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시므온은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죽고 죽는 세상에서 종일토록 수고하는 삶을 끝내기 위해 그리스도를 만나길 고대했습니다.

    "누가복음 2:29: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 30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 31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 32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 33 그의 부모가 그에 대한 말들을 놀랍게 여기더라"

    예수님을 만난 시므온은 기뻐했습니다. 성령이 말씀하신대로 자신을 평안히 놓았준다 고백했습니다. 나가고 싶어도 스스로 나갈 수 없는 이 땅에서 자신을 꺼내줄 구원자를 만났기 때문입니다.

    넷플릭스 영화 [디스커버리]는 종교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사후 세계를 과학으로 입증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버 박사는 죽은 아내를 추적하기 위해 사후세계를 연구했습니다 40년의 연구 끝에 그는 죽음 이후에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다 발표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무려 400만명이 자살을 했습니다. 오늘의 괴로움을 도피하는 수단으로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죽음은 괴로움을 피하는 도구가 될 수 없습니다. 하버 박사가 밝혀낸 사후세계는 이루지 못한 현실의 대체품으로 또 다른 미완의 세계였습니다. 불교의 윤회나 영화 [사랑의 블랙홀]처럼 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를 기다리는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완벽한 세상입니다. 우리의 이웃이 우리의 몸이 되고 우리가 또 다른 누군가의 몸이 되어 서로 하나 되는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허다한 죄가 덮어지고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한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자들로 가득 찬 곳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바울은 하나님 나라를 알게 되자 죽음도 유익이라 생각했습니다. 괴로움과 수고하는 이 세상을 떠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세상에 머물 것을 소망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에게 맡겨진 복음 증거의 사명 때문에 이 땅에 머물겠다 말했습니다.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을만큼 좋은 하나님 나라를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수 있도록 쫓겨난 땅에 좀 더 머물겠다 말한 것입니다.

    "빌 1: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 22 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 24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우리에게도 더 나은 세상은 쫓겨나 수고하고 땀흘리며 괴로워하는 이 세상이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하나님 나라입 니다. 하나님은 그곳으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해 우리를 선택했고 은혜를 베풀었으며 예수님을 믿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아직 이 곳에 머무는 것은 바울과 같이 이 땅에서 더 나은 것을 발견한 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입니다. 여전히 이 땅에 갇혀 아래 것만 추구하는 자들에게 위의 것을 추구하며 위의 것으로 사는 자의 삶을 증거하기 위해 오늘 우리를 이곳에 머물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므온의 기다림처럼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바울과 같이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깨닫게 하신 복된 소식을 세상에 전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2. 칼에 마음을 찔리는 교회

     

    마리아는 수 많은 사람 중에 선택 받은 사람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많은 사람들이 여자의 후손을 낳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사람의 노력으로 여자의 후손을 낳지 못 했습니다. 오직 성령으로 임신한 하와만 여자의 후손을 낳았습니다. 때문에 천사 가브리엘은 마리아를 향해 '은혜를 받은 자'라고 말하였습니다. 사가랴의 아내 엘리사벳도 마리아의 임신을 알고 마리아를 향해 '여자 중에 복이 있는 자'라 말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은혜를 받은 자이며 복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시므온은 마리아가 칼이 마음을 찌르는 고통을 겪을 것이라 말하였습니다. 마리아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마음의 고통을 겪게 됩니다. 저의 친구는 회사에서 사고로 온 몸이 검게 탄 사람의 사망 사고를 본 적이 있다고 합니다. 그 모습이 너무 끔찍해 제대로 바라보지 못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 도착한 어머니는 이내 자신의 아들을 알아보고 울며 큰 소리를 질렀다고 합니다. 친구의 말에 의하면 어머니의 소리는 사람의 소리 같지 않았다고 합니다. 평생 살며 들어 본 적 없는 소리로 어머니가 통곡했다 말했습니다. 글을 쓰는 저 역시 자녀의 죽음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일입니다.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야 합니다. 자녀를 가진 부모라면 모두 저와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두 눈으로 봐야 했습니다. 마리아의 은혜와 복이 그녀의 삶을 그곳으로 인도 했습니다.

    "2:34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 35 또 칼이 네 마음을 찌르듯 하리니 이는 여러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려 함이니라 하더라"

    시므온은 마리아의 아픔은 교회로 부름 받은 우리들의 마음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로 부름 받은 성도는 마리아와 같이 은혜로 구원에 이르며 그것을 복으로 여깁니다. 교회도 마리아와 같이 은혜와 복을 받은 자입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걷는 길은 은혜와 복 받은 자의 길로 곧 교회의 길이 됩니다. 예수님은 자신 때문에 욕을 듣고 박해를 겪으며 악한 말을 들을 때 복이 있다 말씀하였습니다. 마리아와 같이 많은 사람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삶은 꽃길이 아니라 십자가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큰 어려움 가운데 있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른 길을 걷고 있고 좁은 문에 가까워 졌기 때문입니다.

    "마 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3. 속량을 기다리는 자

    이미 살펴본 것처럼 안나는 나이가 많은 과부였습니다. 그녀의 결혼 생활은 일곱 해에 불과했습니다. 그녀는 홀로 긴 세월을 보내다 팔십 사 세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빈 자리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처럼 가슴 깊이 새겨졌습니다. 이때 안나는 자신의 빈자리를 헛된 것으로 채우지 않았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빈자리가 예루살렘을 속량하는 그리스도로 채워지길 바랬습니다. 이러한 그녀의 바램은 예수님을 만남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안나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성전의 속량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위해 많은 제물을 가지고 왔습니다. 비둘기와 양과 염소 등 다양한 동물이 제물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성전을 떠나지 않았던 안나는 이 모습을 해마다 지켜보았습니다. 수 없이 많은 동물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죄는 끊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안나는 자신의 죄를 덮기 위한 속전의 제사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속량의 제사를 위해 이 땅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렸습니다.

    속전의 제사는 죄를 덮고 가리는 제사로 사람을 온전하게 하지 못합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하나님께 나와 다시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속량의 제사는 한번의 제사로 사람을 온전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죄 없는 삶으로 우리에 대한 죄의 값을 차고 넘치게 지불했기 때문입니다.

    "히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 5 그러므로 주께서 세상에 임하실 때에 이르시되 하나님이 제사와 예물을 원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

    오랫동안 성전에 머물렀던 한나는 그곳에서 자신과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도 한나와 같이 율법의 제사로 구원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나는 그들에게 예수님을 증거했습니다. 예루살렘의 속량을 기다리던 자들에게 하나님이 준비한 제물이 세상에 왔음을 알린 것입니다.

    "히 10:10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 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성전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량보다 속전을 원했습니다. 해마다 드리는 제사를 통해 자신의 죄가 가리워지는 것에 만족했습니다. 짐승을 끌고 들어갈 땐 죄인이었으나 짐승을 죽인 후엔 의인이라 생각했습니다. 버튼만 누르면 불이 켜지는 전등처럼 손쉽게 의롭게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자들 사이에 안나와 같이 속전의 제사를 원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짐승의 제사로 죄를 없애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준비한 제물을 기다렸습니다. 한번의 제사로 사람을 온전하게 할 그리스도의 제사를 원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대부분은 일주일에 한번 교회를 나오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바쁜 한 주를 보낸 후 주일이면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립니다. 이 같은 신앙생활은 마치 속전의 제사와 같습니다. 주일에 참석한 한 번의 예배가 일주일의 모든 죄를 가려주고 없애준다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생활은 속량의 제사와 같아야 합니다. 일주일에 한번 교회에 나오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됩니다. 날마다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행하며 그 은혜를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전에 있었지만 속전을 원하는 자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 했습니다. 속량을 원하는 자만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교회에서도 속전을 원하는 자들은 항상 예배에 참석하나 예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속량을 원하는 자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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