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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4] 1:26-38 예수님을 낳는 교회기독교_ 기독교/누가복음 2023. 6. 12. 09:31SMALL

지난 시간 말씀 - 가브리엘은 자녀가 없던 사가랴에게 찾아가 세례자 요한이 태어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사가랴는 자신과 아내가 늙었다는 이유로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못 했습니다. 사갸라는 흠 없이 율법은 지켰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믿지 못 했습니다. 가브리엘은 믿음 없는 사가랴를 말 못 하는 자로 만들며 정한 때가 되면 다시 말을 할 수 있다 말했습니다. 가브리엘이 말한 정한 때는 사가랴의 믿음이 발휘되고 또한 확인되었을 때입니다. 가브리엘의 말대로 아들의 이름을 요한으로 정했을 때 사가랴의 입이 풀려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가랴에게 요한의 태어남을 알린 가브리엘은 6개월 뒤 마리아를 찾아갔습니다. 사가랴와 예수님 사이엔 6개월의 시간적 간격이 있습니다. 6개월의 간격은 단순히 시간적 정보만 전해주지 않습니다. 이미 여러번 살펴본 것처럼 성경에서 숫자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특히 숫자 6은 율법을 상징하는 숫자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만들며 여섯째 날까지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였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따라 안식일이 주어질 때 하나님은 여섯째 날까지 열심히 일을 하고 일곱째 날에 하던 일을 멈추라 말씀하였습니다. 여섯째 날까지는 율법 안에 최선을 다하고 일곱째 날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다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배경 속에 숫자 6은 율법을 담은 숫자로 이해되었습니다. 자신의 수고와 열심으로 구원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행위를 숫자 6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과 예수님 사이에 6개월의 간격이 있다는 것은 1-6에 속한 세례자 요한과 6을 넘어 안식을 의미하는 7로 오신 예수님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후에 자세히 살펴 보겠지만 율법으로 온 세례자 요한과 율법을 넘어 은혜로 우리에게 온 예수님을 6개월의 간격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당시 마리아는 나사렛에 살고 있었습니다. 마태는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애굽으로 피신한 후 나사렛에서 자랐는데 이는 나사렛 사람이라 칭함을 받을 것이라는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 말했습니다. "마 2:23 나사렛이란 동네에 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하지만 구약성경에 나사렛을 언급한 선지자는 없었고 구약 성경에 나사렛이라는 지명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선지자의 말씀을 이루려 했다는 마태의 진정성은 큰 의심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태의 이러한 말은 이사야 11:1에 대한 해석임이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라 말했습니다. "사 1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이새는 보아스와 룻의 손자이자 오벳의 아들로 다윗을 낳은 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다윗의 줄기 곧 다윗의 혈통을 따라 한 싹이나며 그 뿌리가 한 가지에서 결실한다 말했습니다. 이때 결실할 '가지'는 히브리어로 '네쩨르' 라 합니다. 예수님이 자란 나사렛은 이 단어에서 파생되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은 결실할 '네쩨르'가 '나사렛'에서 등장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마태는 이러한 기대를 따라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자랐다 말하였습니다.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누가는 마태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 나사렛에 살았다 말함으로 예수님이 '나사렛 사람' 으로 불리기에 충분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가브리엘은 하나님의 보냄으로 마리아에게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이 가브리엘을 보냈기에 가브리엘의 모든 말은 하나님의 말이 됩니다. 비록 하나님이 전면에 등장하지 않지만 모든 이야기의 배후에는 하나님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태어남을 알리는 오늘 본문은 하나님을 칭하는 '하나님' 혹은 '주'에 해당하는 단어가 13절 가운데 8번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태어남이 철저히 하나님의 뜻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삼손의 태어남을 알리러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를 방문하였을 때 마노아는 여호와의 사자를 위해 염소 새끼로 음식을 준비하겠다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염소 새끼로 자신을 위해 음식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께 번제로 드리라 말했습니다. "삿 13:15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말하되 구하옵나니 당신은 우리에게 머물러서 우리가 당신을 위하여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게 하소서 하니 // 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마노아가 섬겨야 할 자는 자신을 찾아온 여호와의 사자가 아니라 그를 보낸 여호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마리아를 찾아온 가브리엘에게 시선을 고정해선 안됩니다. 가브리엘을 통해 자신의 뜻을 전한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축구선수 손흥민이 오른발로 슛을 넣었을 때 골대 안으로 들어간 공이나 오른발이 아니라 손흥민을 주목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태어남을 전하는 가브리엘이 아니라 가브리엘을 보낸 하나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가브리엘보다 좋은 소식을 계획하고 이끄시고 완성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찾아가 '은혜를 받은 자여' 라는 말로 시작하여 '하나님께 은혜를 입었다'는 말로 인사말을 나누었습니다. 은혜로 인사를 시작해 은혜로 인사를 마무리 한 후 자신이 전할 내용을 말해주었습니다. 은혜라는 말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값 없이 거저 주시는 것' 입니다. 자신의 공로나 헌신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베푸는 자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하나님께 선택 받은 것은 마리아의 착한 행실이나 선한 마음 혹은 깊은 신앙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불의가 없는 하나님의 전적인 선택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며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선택했습니다. "막 3:13 또 산에 오르사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 // 14 이에 열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또 보내사 전도도 하며 // 15 귀신을 내쫓는 권능도 가지게 하려 하심이러라" 지혜와 능력 그리고 물질의 많고 적음은 기준이 되지 못 했습니다. 예수님의 뜻이 부름의 이유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의 부름을 보라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지만 교회의 성도들은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않고 능한 자가 많지 않고 문벌 좋은 자도 많지 않았다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이들을 교회로 부른 이유는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심이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십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마리아의 부름은 물론이고 고린도교회 성도들처럼 우리의 부름은 우리의 바르고 선함에서 비롯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부족함과 약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찾아오고 만나주고 변화시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 은혜로 우리가 교회로 부름 받은 성도가 된 것입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 말했습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예수로 그는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어질 것이라 말했습니다. 또한 다윗의 왕위를 그에게 주어 영원히 야곱의 집을 왕으로 다스리고 그의 나라가 무궁하게 된다 말해주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주겠다 여러번 약속해주었습니다. 다윗 언약은 가장 대표적인 예가 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몸에서 날 씨가 하나님의 집을 건축하고 나라와 왕위를 영원히 견고히 할 것이라' 약속해주었습니다. "삼하 7:12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 13 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 14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 15 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 16 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이 언약은 성전을 건축한 솔로몬에게 응한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몰락으로 영원히 견고한 나라에 대한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이 약속은 솔로몬에게 응한 것이 아니라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이해되었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를 통해 다윗 언약이 성취될 것이라 말해주었습니다. 더욱이 그 이름을 예수라 말했는데 이는 여호수아, 호세아와 같은 이름입니다. 여호수아는 모세를 통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속의 땅으로 인도한 자이고, 호세아는 다른 남자 품에 안긴 고멜을 되찾아온 남편입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가 이러한 아들을 낳을 것이라 말한 것입니다.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은 했지만 결혼은 하지 않은 상태로 남자를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마리아에게 처녀라는 단어를 3번이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처녀였던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게 된다는 것은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하나님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분입니다.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아브라함과 사라는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늙었고 사라는 여자의 생리가 끊어졌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능력은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이삭을 허락했습니다. 이삭 역시 나이 40세에 결혼했지만 20년 동안 아이가 없었습니다. 이삭은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의 능력은 이삭에게 쌍둥이를 허락했습니다. 야곱의 아내 라헬 역시 아이가 없었습니다. 레아와 두 여종은 무려 10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라헬은 자녀가 없어 괴로웠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라헬을 생각하사 자녀를 허락하였습니다. 야곱이 가장 사랑했던 요셉과 베냐민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자녀 없는 자에게 자녀를 주는 것에 국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천지와 만물을 홀로 창조하신 분입니다. 있는 것을 바꾸고 고쳐 새 것이 되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래서 처녀였던 마리아가 아이를 낳게 됨은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게 합니다. 가브리엘은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리아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낳을 것이라 말해주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 도무지 일어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의 능력이 이룰 것이라 말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처녀였던 마리아의 임신을 바라보며 우리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깨달아야 합니다. 자녀 없는 자에게 자녀를 주고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있는 것을 창조하는 하나님이 죽음과 사망에서 생명과 영생으로 우리의 삶을 옮겨 주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는 언약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후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보내 준다 약속해 주었습니다. "창 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후 구약 성경은 여자의 후손을 향해 흘러갔습니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은 족장과 나라의 모습이지만 그 이면엔 여자의 후손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여자의 후손을 낳으려 했고 열심과 수고로 여자의 후손이 되려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만나 낳은 자녀는 모두 사람에 불과 했습니다. 여자의 후손이 되지 못했습니다. 모두 사람의 후손이었고 아담의 자녀였습니다. 아담이 흙으로 지음 받아 흙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그의 자녀는 모두 흙으로 돌아갔습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영원한 나라를 꿈꿨지만 오히려 뱀의 종이 되었고 나라를 잃어버렸습니다. 여자의 후손을 얻을 수 없는 사람의 한계가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여자의 후손을 보낼 것이라 말해주었습니다. "사 7:14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사야는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고 그의 이름이 임마누엘이라 말하였습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는 것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실 것이라 말한 것입니다. 이러한 이사야의 말씀은 마리아에게 찾아온 가브리엘을 통해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처녀였던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낳은 자는 여자의 후손이 될 수 없으나 성령과 사람이 만나 낳은 자녀는 여자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처녀였던 마리아의 임신을 바라보며 홀로 언약을 성취하시는 하나님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믿을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우리의 믿음이 되기 위해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여자의 후손을 보내주기로 약속한 하나님이 여자의 후손을 보내주어 약속을 성취한 것처럼 죄인을 구원하겠다는 약속도 하나님이 반드시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
셋째는 죄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죄의 값을 사망으로 정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떠나면 죽음에 이릅니다. 이러한 죽음을 피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아담에게 가죽옷을 만들어준 것처럼 다른 피조물의 죽음으로 자신의 죄를 덮어야합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깨닫도록 이스라엘에게 희생제사를 드리게 하였습니다. 자신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는 피조물을 통해 자신의 죄가 가려짐을 두 눈으로 보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동은 공의로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덮어둘 뿐 없애지는 못 했습니다. 사람의 값과 짐승의 값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지은 죄는 반드시 사람이 갚아야 합니다. 그래야 저울이 기울지 않습니다. "히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 2 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하게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제사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 // 3 그러나 이 제사들에는 해마다 죄를 기억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 // 4 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사람의 죄값을 지불하기 위해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본체이나 하나님과 동등될 것으로 자신을 여기지 않고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 곧 사람이 되었습니다. 사람의 죄값은 사람으로 지불되어야 하기에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 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사람이 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반드시 죄가 없어야 했습니다. 자기 죄가 아닌 다른 이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자가 되야 했습니다. 죄 없는 삶의 첫 단추는 사람의 후손이 아닌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사람은 모두 죄 가운데서 태어나 죄를 짓고 살다 죄에 눌려 죽게 됩니다. 아담은 죄를 지어 쫓겨났으니 나는 죄를 짓지 않아 구원 받을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은 크나큰 착각입니다. 다윗은 시편 51:5에서 자신이 죄악 중에 출생하였고 어머니가 죄 중에 자신을 잉태하였다 말하였습니다. 태어난 후 죄인이 된 것이 아니라 태어나기 전부터 죄인이라 말한 것입니다. 바울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5:22에서 우리는 아담 안에서 죽었다 말합니다. 아담 이후 죽음에 빠진 것이 아니라 아담 안에서 이미 죽은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2:1은 예수님을 만나기 전 우리의 상태를 우리가 죄와 허물로 이미 죽은 자라 말합니다. 태어날 때부터 죄를 안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죄를 대신 할 예수님은 아담의 후손이 아닌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야 했습니다. 죄와 사망의 고리를 끊고 의와 생명의 길을 열기 위해 처녀였던 마리아를 택해 성령으로 잉태된 것입니다. 해마다 드려지는 짐승의 제사를 걷어내고 십자가에서 드려진 한 번의 제사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히 10:11 제사장마다 매일 서서 섬기며 자주 같은 제사를 드리되 이 제사는 언제나 죄를 없게 하지 못하거니와 // 12 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 13 그 후에 자기 원수들을 자기 발등상이 되게 하실 때까지 기다리시나니 // 14 그가 거룩하게 된 자들을 한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하셨느니라"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말을 선뜻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아이를 낳지 못 했던 여자가 아이를 낳게 되는 일이 종종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삭의 아내 리브가, 야곱의 아내 라헬 그리고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등 많은 이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이를 낳았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여자가 아이를 낳게 되는 일은 지금까지 한 번도 없던 일이었습니다. 이해할 수 없고 기대할 수도 없으며 예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가브리엘에게 자신은 남자를 알지 못하는 자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를 물었습니다. 행여라도 자신이 원할지라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가브리엘은 마리아에게 방법이 있다 말했습니다. 성령이 마리아에게 임하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능력이 마리아를 덮으면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을 낳을 수 있다 말했습니다. 가브리엘은 증거로 마리아의 친척 엘리사벳을 예로 들었습니다. 엘리사벳은 사가랴와 결혼했지만 나이들어 늙을 때까지 아이가 없었습니다. 아이를 달라 기도했지만 정작 아이가 생길 것이라는 말을 믿지 못할 정도로 육체적 한계에 부딪쳤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를 둘러싼 주변 사람들도 인정하는 바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이 임신을 했습니다. 아이를 가질 수 없던 엘리사벳의 임신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마리아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가브리엘의 말을 거부할 수 없었습니다. 엘리사벳에게 아이를 허락한 하나님이 자신에게도 아이를 낳게 할 것을 믿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누가복음과 달리 요셉의 입장에서 예수님의 태어남을 전하는 마태복음은 요셉이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듣고 결혼을 포기하려 했다 말합니다. 보통 13세에 혼인하는 유대인의 전통은 약혼을 한 후 1년의 시간이 지난 후 결혼을 합니다. 1년의 시간은 약혼한 여자가 자신의 순결을 증명하는 시간입니다. 이 시기에 임신을 하면 간음으로 간주하여 돌에 맞아 죽습니다. 마리아도 이 사실을 모를리 없었습니다. 이 시기에 임신을 하면 남편으로부터 버림 받고 돌에 맞아 죽거나 남편의 의로움으로 살아남더라도 평생 부정한 자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질 걸 마리아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자신에게 닥칠 일들을 덤덤히 받아들였습니다. 능치 못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가브리엘이 전한 모든 일이 자신에게 일어날 것이라 말했습니다.
결국 마리아의 믿음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을 낳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여자의 후손을 낳기 위해 여자가 여전히 옛 뱀과 싸우고 있다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은 해산 할 때가 이른 여자와 여자의 아들을 노리는 붉은 용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용은 에덴동산에서 하와를 유혹했던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입니다. "계 12:9 큰 용이 내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탄이라고도 하며 온 천하를 꾀는 자라 그가 땅으로 내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그와 함께 내쫓기니라" 마리아가 예수님을 낳음으로 끝난 줄 알았던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여자의 후손을 낳을 여자는 마리아로 대표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여자의 후손 곧 예수 그리스도를 낳아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없이는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 마리아에게 가브리엘을 보낸 것처럼 우리에게 성경을 주었습니다. 또한 성령과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리아가 여자의 후손을 낳은 것처럼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고 그 능력을 의지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믿음으로 예수님을 낳은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님을 낳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 삶은 어린 마리아가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로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세상의 손가락질은 물론이고 멸시, 천대와 박해가 항상 따라 다닙니다. 하지만 그럴 수록 우리는 더욱 굳은 믿음 위에 서야 합니다. 진통의 간격이 짧을 수록 해산할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요 16:20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겠으나 세상은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 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으로 말미암아 그 고통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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