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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복음 3] 1:7-25 하나님의 보이는 손
    기독교_ 기독교/누가복음 2023. 6. 12.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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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경제학자이자 도덕철학자인 아담 스미스(Adam Smith)는 국부론으로 알려진 <국부의 성격 및 원인에 대한 연구> 에서 국가는 시장에 간섭하지 않고 치안과 국방에 집중해야 한다 말했습니다.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운영하기 때문입니다. '보이지 않는 손'이란 수요와 공급을 통해 운영되는 시장의 흐름을 말합니다. 쌀이 많이 공급되면 쌀을 먹는 수요자들은 싼 값에 쌀을 얻을 수 있고 쌀의 공급이 적어지면 쌀을 먹는 수요자들은 비싸게 쌀을 사야 합니다. 가격을 정하는 주체나 실체가 없음에도 시장이 효율적으로 운영 되기에 이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계몽주의 이후 강조된 이성의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17세기 말까지 유럽은 기독교 사상을 바탕으로 세상은 하나님이 다스린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산업혁명과 신지식에 대한 요구가 깊어지며 사람들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떠나 사람이 다스리는 세상을 원했습니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하나님의 다스림은 거부하는 이신론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신론의 주된 내용은 하나님이 시계와 같은 세상을 만든 후 더 이상 우리 삶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은 죽었다" 고 말한 니체의 말처럼 신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신의 개입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신의 죽음을 선고한 세상은 스스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모든 분야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었습니다. 더 쉽게 무거운 짐을 옮길 수 있고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으며 더 많은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늘 높이 올라간 풍선처럼 끝 없이 세상은 나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국 하늘 높이 올라간 풍선이 터져 버렸습니다. 세계 전쟁이 일어나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높이 쌓아올린 탑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때문에 사람들은 허무함 속에 진리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고 이전과 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어디에도 답이 없고 어디에나 답이 있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길을 잃은 곳에서 길을 찾았고 길을 찾은 곳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죽음을 선포하고 새로운 답과 길을 찾다 모든 것을 잃은 시대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신은 죽었다' 말한 니체는 죽었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살아계십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 졸지도 않고 주무시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통해 깨달아 우리의 구원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소개한 후 누가복음은 엘리사벳이 잉태하지 못했다 말하고 있습니다. "1:7 엘리사벳이 잉태를 못하므로 그들에게 자식이 없고 두 사람의 나이가 많더라" 이는 헬라어 원문에 '그리고' 혹은 '그러나'에 해당하는 접속사를 반영하지 않은 해석입니다.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그러나 그들에게 아이가 없었다' 가 됩니다. 지난 시간 살핀 것처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완벽을 요구하는 율법 앞에 완벽한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주의 모든 규례와 계명을 흠이 없이 행했다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오늘의 본문은 이들에게 자녀가 없다는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구약에서 자녀가 없는 것은 죄를 담당한 모습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주의 규례와 계명 앞에 흠 없는 삶을 살았지만 그들에게 자녀가 없는 흠이 있었습니다. 자녀가 없는 흠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 섰습니다. 두 사람의 나이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이 모든 주의 규례와 계명을 흠 없이 지켰음에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한계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한계에서 출발한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이야기는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해결됩니다. 사가랴는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 제사장의 직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시간 살핀 것처럼 다윗 때에 성전 제사를 위해 제사장 그룹은 24개의 반열로 개편되었습니다. 각 반열이 6개월에 한 번씩 봉사할 기회를 얻습니다. 예레미야스에 의하면 당시 예루살렘에는 8000명 가량의 제사장이 있었다 합니다. 이를 24 반열을 따라 계산하면 한 반열당 약 333명의 제사장이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제사장을 24개의 반열로 나누었지만 여전히 제사장의 숫자가 너무 많았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성전에 들어가 분향할 제사장은 제비를 뽑아 결정했습니다. 약 333명 가운데 한 명을 뽑는 일이기에 평생 한번도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지 못하는 제사장도 있었고 뽑힌다 해도 한 번 아니면 두 번을 넘기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사가랴는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비뽑기에 하나님의 뜻이 있다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사가랴가 분향을 위해 성전에 들어갈 자로 제비 뽑혔다는 것은 하나님이 많은 사람 중 사가랴를 선택했고 그를 성전으로 초대한 것입니다.

     

    8 마침 사가랴가 그 반열의 차례대로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새 // 9 제사장의 전례를 따라 제비를 뽑아 주의 성전에 들어가 분향하고

     

     

    성전에 들어간 사가랴는 분향을 담당했습니다. 분향은 매일의 제사와 관련하여 아침과 저녁에 드려졌습니다. 분향을 담당한 제사장은 번제단에서 숯불을 가져다 금 향로에 넣고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는 휘장 앞 분향단으로 가져 갑니다. 하나님이 머무는 지성소 앞에 위치하므로 분향단은 평제사장이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선 제사장은 자신의 죄를 가리기 위해 번제단의 숯불로 연기를 만들어 하나님의 시야를 가렸습니다. 또한 향로 안의 곱게 간 향으로 좋은 냄새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과정이 끝나면 분향단 앞의 제사장은 물론이고 성전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다가간 분향의 시간을 기도의 순간으로 이해한 것입니다. 다윗의 시편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줍니다. 다윗은 자신의 부르짖음에 하나님이 응답하길 기도하며 자신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이 되길 원한다 말했습니다. "시 141:1 [다윗의 시] 여호와여 내가 주를 불렀사오니 속히 내게 오시옵소서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내 음성에 귀를 기울이소서 // 2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 같이 되게 하소서" 요한계시록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요한계시록 5장은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다 말하며 그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말하였습니다."계 5:8 그 두루마리를 취하시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이 그 어린 양 앞에 엎드려 각각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졌으니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 또한 요한계시록 8장에서도 금 향로가 나오는데 이 역시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 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간다 말하였습니다. "계 8: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와 합하여 보좌 앞 금 제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따라서 분향을 담당한 사가랴는 자신의 역할을 담당하며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또한 사가랴가 분향을 할 때 성전에 모인 모든 백성들도 함께 기도를 했습니다.

     

    1:10 모든 백성은 그 분향하는 시간에 밖에서 기도하더니

     

    모든 사람이 기도하고 있을 때 주의 사자가 사가랴에게 모습을 나타냈습니다. 사가랴는 주의 사자를 보고 놀랐고 또한 무서워했습니다. 천사는 사가랴에게 무서워하지 말라 말한 후 그의 간구를 들었다 말하였습니다. 천사가 들은 사가랴의 간구는 자녀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분향을 위해 제비 뽑힌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을 대표하는 것은 물론이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대표합니다. 따라서 사가랴의 기도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이어야 했습니다. 잃어버린 나라의 회복을 기도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사가랴는 분향단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이미 한계에 부딪친 자신의 자녀 없음을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1:11 주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향단 우편에 선지라 // 12 사가랴가 보고 놀라며 무서워하니 // 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하나님은 사가랴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습니다. 주의 천사를 통해 사가랴가 기도한 대로 자녀를 주겠다 말씀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가랴가 낳을 아들이 주 앞에 큰 자가 될 것이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사지 아니하고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할 자라 말해주었습니다. 또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할 것이라 말해 주었습니다. 원하고 바라고 기대한 것보다 더 큰 하나님의 응답이 사가랴에게 전해졌습니다.

     

    1:14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이요 많은 사람도 그의 태어남을 기뻐하리니 // 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 16 이스라엘 자손을 주 곧 그들의 하나님께로 많이 돌아오게 하겠음이라 // 17 그가 또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거스르는 자를 의인의 슬기에 돌아오게 하고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을 준비하리라

     

    하지만 사가랴는 천사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분향단 앞에서 자녀가 있기를 기도했지만 정작 천사가 자녀를 준다 말에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라고 말하며 그 말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1:18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가 많으니이다" 천사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늙음과 아내의 나이 많음을 더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모두 지킨다 자부했던 종교지도자들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 한 것처럼 사가랴 역시 모든 주의 규례와 계명을 흠 없이 행했지만 사가랴에겐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천사로 인해 완벽한 행동 이면에 빈약한 믿음의 민낯이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천사는 믿음 없는 사가랴에게 자신은 가브리엘이고 하나님 앞에 서 있다 말했습니다. "1:19 천사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하나님 앞에 서 있는 가브리엘이라 이 좋은 소식을 전하여 네게 말하라고 보내심을 받았노라" 가브리엘의 이름은 성경에서 총 4번 등장합니다. 다니엘서에서 2번 누가복음에서 2번입니다. 다니엘서에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종말론적 비밀을 계시하는 역할로 나타납니다. 다니엘서 8장에선 다니엘이 본 마지막 날에 대한 환상을 깨닫게 하는 하였고 "단 8:16 내가 들은즉 을래 강 두 언덕 사이에서 사람의 목소리가 있어 외쳐 이르되 가브리엘아 이 환상을 이 사람에게 깨닫게 하라 하더니 // 17 그가 내가 선 곳으로 나왔는데 그가 나올 때에 내가 두려워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인자야 깨달아 알라 이 환상은 정한 때 끝에 관한 것이니라" 다니엘서 9장에선 기도하던 다니엘에게 나타나 지혜와 총명을 주어 환상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단 9:21 곧 내가 기도할 때에 이전에 환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 22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이르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왔느니라" 따라서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사가랴에게 가브리엘이 자신의 이름을 밝힌 것은 하나님의 뜻이 다니엘에게 임한 것처럼 사가랴에게 임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는 가브리엘이 자신은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표현을 통해 더 확실해 집니다.

     

    가브리엘은 자신이 온 이유는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라 말했습니다. 헬라어로 좋은 소식은 복음을 의미합니다. [εὐαγγελίσασθαί -bringing good news] 개인적으로 자녀가 없던 사가랴에게 자녀가 생길 것이라는 말은 좋은 소식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가브리엘이 말한 좋은 소식은 사가랴 한 사람에게만 좋은 소식이 아니라 온 인류에게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인 말라기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 선지자 엘리야를 보내준다는 약속을 하고 끝을 맺습니다. "말 4:5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자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버지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돌이키지 아니하면 두렵건대 내가 와서 저주로 그 땅을 칠까 하노라 하시니라" 말라기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려 400여년 동안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도록 선지자 엘리야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가브리엘은 사가랴의 아들이 바로 그 사람이라 말해주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으로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시작될 것이라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자 요한의 출생은 온 인류의 좋은 소식이고 예수님이 완성하실 복음의 출발이 됩니다.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하지만 사가랴는 좋은 소식을 전하기 위해 온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가브리엘은 사가랴를 말 못하는 자가 되게 하였습니다. "1:20 보라 이 일이 되는 날까지 네가 말 못하는 자가 되어 능히 말을 못하리니 이는 네가 내 말을 믿지 아니함이거니와 때가 이르면 내 말이 이루어지리라 하더라" 성전 밖에서 기다리던 자들은 사가랴의 지체함을 이상히 여겼습니다. 사가랴가 성전에서 특별한 체험을 했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성전 밖으로 나온 사가랴는 자신이 겪은 일을 말해주고 싶었지만 가브리엘의 말처럼 말할 수 없는 자가 되었습니다. 사가랴는 말대신 몸으로 말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정확한 의사표현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1:21 백성들이 사가랴를 기다리며 그가 성전 안에서 지체함을 이상히 여기더라 // 22 그가 나와서 그들에게 말을 못하니 백성들이 그가 성전 안에서 환상을 본 줄 알았더라 그가 몸짓으로 뜻을 표시하며 그냥 말 못하는 대로 있더니 // 23 그 직무의 날이 다 되매 집으로 돌아가니라" 시간이 흘러 가브리엘의 말처럼 엘리사벳이 임산하였고 아이가 태어났지만 사가랴는 여전히 말을 하지 못 했습니다. 가브리엘이 말한 때가 이르지 않은 것입니다. 사가랴는 태어난 지 팔일 된 아이에게 율법을 따라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이웃과 친족들은 아이의 이름을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로 정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은 사가랴가 아닌 요한으로 이름 짓겠다 말했습니다. 말할 수 없던 사가랴도 서판에 요한의 이름을 적었습니다. 아이의 이름이 요한으로 정해지자 말하지 못 하던 사가랴가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눅 1:62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 63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 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사가랴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가브리엘이 말한 때가 이른 것입니다. 가브리엘은 사가랴에게 나타나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을텐데 그 이름은 요한이라 말해주었습니다. "1: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사가랴는 이를 믿지 못해 말 못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약속대로 아들이 태어나자 이제는 사가랴가 가브리엘의 말을 믿고 아들의 이름을 요한으로 정했습니다. 믿음 없던 사가랴가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가브리엘이 말한 때가 되어 사가랴는 다시 말을 하게 된 것입니다.

     

    믿음 없는 자를 믿음 있는 자로 만들기 위한 하나님의 노력은 사가랴와 비슷한 내용을 담은 아브라함의 삶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아브라함과 사라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창 11:30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므로 자식이 없었더라" 하나님은 계속해서 아브라함에게 자녀를 준다 약속해 주었지만 아브라함은 사가랴처럼 이를 믿지 못 했습니다. 처음엔 조카 롯을 상속자로 생각해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이 보여줄 곳으로 떠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고 "창 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또한 아내의 말을 듣고 하갈과 동침해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창 16:15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을 낳으매 아브람이 하갈이 낳은 그 아들을 이름하여 이스마엘이라 하였더라" 뿐만 아니라 아들을 낳을 아내를 누이라 속여 두 번이나 빼앗기기도 했습니다."창 20:2 그의 아내 사라를 자기 누이라 하였으므로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람을 보내어 사라를 데려갔더니" 믿음 없는 아브라함의 행동은 사가랴와 엘리사벳처럼 나이들어 늙고 사라는 여성의 생리마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 "창 18:11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에게는 여성의 생리가 끊어졌는지라"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육체적 한계를 더욱 의지한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한 계획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육체적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브라함이 사라를 통해 아들 이삭을 낳게 한 것입니다. "창 2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를 돌보셨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사라에게 행하셨으므로 // 2 사라가 임신하고 하나님이 말씀하신 시기가 되어 노년의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낳으니 // 3 아브라함이 그에게 태어난 아들 곧 사라가 자기에게 낳은 아들을 이름하여 이삭이라 하였고 // 4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앞에 두 손 두 발을 들었습니다. 믿음 없던 아브라함이 굳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는 이삭을 번제로 바치는 모습에서 확인되어집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명령했습니다. "창 22: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2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종과 그의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일러 주신 곳으로 가더니 // 4 제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 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이전에 롯을 떠나 보내지 못 했던 아브라함은 이번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삭을 향해 칼을 들었습니다. 이삭이 상속자가 될 것이라 말씀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자신이 이삭을 죽어도 하나님이 다시 살려 상속자가 되게 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히 11:17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그는 약속들을 받은 자로되 그 외아들을 드렸느니라 // 18 그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 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믿음 없던 아브라함이 약속 지키는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믿음 있는 아브라함이 된 것입니다.

     

    또한 사가랴의 모습은 삼손의 아버지 마노아의 모습과도 매우 닮아 있습니다. 사가랴와 아브라함이 그러했던 것처럼 마노아의 등장도 그가 아이가 없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삿 13:2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 여호와의 사자는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이제 곧 임산하여 아이를 낳을 것이고 앞으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고 어떠한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말해주었습니다. "삿 13:3 여호와의 사자가 그 여인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본래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였으나 이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 4 그러므로 너는 삼가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지니라" 태어날 아이는 하나님께 바쳐질 나실인으로 머리에 칼을 대지 말라 말했습니다. "삿 13:5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 // 6 이에 그 여인이 가서 그의 남편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내게 오셨는데 그의 모습이 하나님의 사자의 용모 같아서 심히 두려우므로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내가 묻지 못하였고 그도 자기 이름을 내게 이르지 아니하였으며 // 7 그가 내게 이르기를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이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며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부터 그가 죽는 날까지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하더이다 하니라" 마노아의 아내는 이 사실을 남편에게 말했습니다. 마노아는 아내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알고 싶다며 하나님께 다시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달라 기도했습니다. "삿 13:8 마노아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르되 주여 구하옵나니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다시 오게 하사 우리가 그 낳을 아이에게 어떻게 행할지를 우리에게 가르치게 하소서 하니" 이미 여호와의 사자는 부모가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말해주었지만 마노아는 이 사실을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믿음 없는 마노아를 위해 하나님의 사자를 보내주었습니다. 마노아는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 후 당신의 말대로 아이가 태어났으면 좋겠다 말한 후 어떻게 아이를 키워야하는가를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사자는 이전에 아내에게 이른 것을 다 지켜 행하라 말했습니다. 마노아는 이야기를 다 듣고 여호와의 사자를 위해 염소 새끼로 음식을 준비했다고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자신은 음식을 먹지 않는다 말하며 준비한 염소를 여호와께 드리라 말하였습니다. 마노아가 여호와의 사자에게 음식을 권한 이유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알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삿 13:16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에게 이르되 네가 비록 나를 머물게 하나 내가 네 음식을 먹지 아니하리라 번제를 준비하려거든 마땅히 여호와께 드릴지니라 하니 이는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을 마노아가 알지 못함이었더라" 마노아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달라 기도했고 그 기도대로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를 찾아왔지만 여호와의 사자를 알아보지 못 했습니다. 하나님과 여호와의 사자에 대한 믿음이 마노아에게 없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로 번제를 드릴 때 이적을 보여줬습니다. "삿 13:19 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이적이 일어난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본즉 // 20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제서야 마노아는 자신이 만난 자가 여호와의 사자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삿 13:21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와 그의 아내에게 다시 나타나지 아니하니 마노아가 그제야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 줄 알고" 믿음 없던 마노아가 하나님이 보여준 이적으로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으로 삼손을 낳았습니다.

     

    살펴본 것처럼 사가랴와 아브라함 그리고 마노아는 믿음 없는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계속되는 약속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육체를 더욱 의지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이들을 향해 계속해서 아들을 주겠다 약속을 했고 그 약속 대로 아들을 허락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믿음 없는 자가 믿음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키는 분이라는 것을 요한과 이삭 그리고 삼손을 통해 확인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로 생각하는가를 물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 대답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곧장 베드로가 복이 있다 말씀하신 후 이를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 말씀하였습니다. "마 16: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하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지는 못 했습니다. 예수님이 잡히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처럼 믿음 없는 베드로를 믿음 있는 자로 만들기 위해 부활하신 후 그를 찾아갔습니다. 세 번 부인한 베드로에게 세 번 나를 사랑하느냐를 물어 그를 용서하고 교회를 이끌 지도자로 불러주었습니다.

     

    백조는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지만 그 자세를 유지하기 위해 물 밑에선 쉴 세 없이 발버둥을 칩니다. 우리의 믿음은 값 없이 거저 주어진 것이지만 이를 위해 하나님은 쉼 없이 우리를 위해 일하셨습니다. 아담의 범죄이후 여자의 후손을 보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었습니다. 또한 우리가 그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우리의 지난 모든 삶을 크신 권능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세상이 보지 못한 하나님의 손을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가 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허락하신 믿음으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약속대로 아들을 허락하여 믿음 주신 하나님이 이번에도 아들을 허락하여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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