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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가복음 6] 눅 1:56-66 과정에서 결과를 바라보는 믿음: '세례자 요한의 출생'
    기독교_ 기독교/누가복음 2023. 6. 1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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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블로그 : https://blog.naver.com/eye2ient/221490573761

     

    [누가복음 6] 눅 1:56-66 과정에서 결과를 바라보는 믿음: '세례자 요한의 출생'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한 후 3개월을 함께 한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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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아는 엘리사벳을 방문한 후 3개월을 함께 한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1:56 마리아가 석 달쯤 함께 있다가 집으로 돌아가니라" 우리말 성경은 단순히 마리아의 목적지를 '집'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헬라어 원문은 마리아가 '그녀의 집'으로 돌아갔다 말하고 있습니다. 약혼은 했지만 결혼을 하지 않았기에 마리아는 요셉의 집이 아닌 이전부터 살고 있던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마리아는 자신의 순결을 증명하는 기간에 임신을 했습니다. 마리아의 목숨은 요셉의 손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요셉의 집을 찾아가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습니다. 임신한 소식을 알자마자 엘리사벳의 집을 찾았고 3개월이 지난 후에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수고나 노력도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하심 아래 이루어지는 일이기에 자신의 문제도 하나님이 해결할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천사가 요셉의 집을 방문함으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임신 소식을 접한 의로운 요셉은 이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결혼을 취소하려 했습니다. 이때 천사가 요셉에게 나타나 마리아의 임신이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말해주었습니다. 또한 아들을 낳을 것인데 그 이름은 예수고 그가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라 알려주었습니다. "마 1:18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라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 // 19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 20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 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하나님이 계획한 구원의 역사를 위해 하나님이 일하셨고 하나님이 해결하였습니다.

    마리아가 떠난 후 엘리사벳의 해산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엘리사벳의 임신과 마리아의 임신 사이에는 6개월의 간격이 있습니다. 엘리사벳이 임신한 후 6개월 뒤 마리아가 임신했습니다. 임신한 마리아는 3개월을 엘리사벳과 보낸 후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따라서 마리아가 떠났을 때 엘리사벳은 임신 9개월이었습니다. 해산할 때가 되었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1:57 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기한이 찼다는 말을 누가는 '성취하다' 혹은 '이루다' 의 수동형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가브리엘의 말이 성취 되었고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습니다. 엘리사벳을 향한 가브리엘의 말이 성취됨으로 요한을 향한 예언과 마리아와 예수님에 대한 예언도 성취될 것을 기대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있어 말을 하면 행하고 계획하면 반드시 그 일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믿을 것 하나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만 유일하게 믿을 수 있는 분입니다. 하나님만 우리의 믿음의 대상이 됩니다.

    엘리사벳이 출산하자 이웃과 친척들이 그녀의 집에 모였습니다. "1:58 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아이를 낳은 엘리사벳을 바라보며 그것이 하나님의 긍휼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미 살펴본 것처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았습니다. 정확히 그들이 몇 살인지 알 수는 없으나 육체적으로 아이를 낳기엔 어려운 나이였습니다. 자녀를 달라 기도했지만 자녀를 준다는 가브리엘의 말을 믿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이 임신을 했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 생각할 때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사벳에게 임하였습니다. 때문에 엘리사벳의 이웃과 친척들은 하나님이 엘리사벳을 긍휼히 여겼다 말했습니다. 엘리사벳의 한계가 분명했기에 하나님의 긍휼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사람의 한계에서 더욱 빛이 납니다.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 생각하는 자는 하나님의 긍휼을 맛보고 누릴 수 없습니다. 두 손들고 항복 할 때 하나님의 일하심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모두 다 할 수 있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마 19:26 예수께서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아이를 낳고 팔 일이 되던 날에 할례를 행하였습니다. "눅 1:59 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언약의 증표입니다. 아브라함은 자녀를 준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았지만(창 15장)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의 말을 듣고 하갈과 동침하여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창 16장) 이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할례를 행하라 말씀하였습니다.(창 17장) 아브라함의 믿음이 흔들릴 때 생식기의 표피를 잘라냄으로 자녀를 허락하실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몸에 간직하라 명령한 것입니다. 이후 할례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은 이스라엘의 편입 의식이 되었습니다. 할례를 행하면 선택 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된다 생각했습니다. 디나 사건때 세겜 족속에게 할례를 요구하는 모습은 이러한 사실을 잘 보여 줍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할례 받지 않은 사람에게 디나를 줄 수 없다 말하며 세겜 족속이 할례를 받으면 한 민족이 될 수 있다 말했습니다. "창 34:14 야곱의 아들들이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는 그리하지 못하겠노라 할례 받지 아니한 사람에게 우리 누이를 줄 수 없노니 이는 우리의 수치가 됨이니라 // 15 그런즉 이같이 하면 너희에게 허락하리라 만일 너희 중 남자가 다 할례를 받고 우리 같이 되면 // 16 우리 딸을 너희에게 주며 너희 딸을 우리가 데려오며 너희와 함께 거주하여 한 민족이 되려니와 // 17 너희가 만일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우리는 곧 우리 딸을 데리고 가리라"

    할례는 굉장히 괴로운 것으로 그 아픔만큼 의미는 확대되고 과장되어 후대에 전해졌습니다. 하나님의 행함을 향한 믿음의 징표가 언약을 지킨 행위의 징표가 되었습니다. 할례가 모든 율법을 덮는 구원의 증거라 생각한 것입니다. "행 15:1 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받지 못하리라 하니 // 2 바울 및 바나바와 그들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형제들이 이 문제에 대하여 바울과 바나바와 및 그 중의 몇 사람을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와 장로들에게 보내기로 작정하니라" 바울은 결코 이러한 주장을 받아 들일 수 없었습니다. 할례는 여러 율법 중 하나로 할례를 지켜 구원에 이르기 원하는 자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졌고 "갈 5:3 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언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모든 율법을 지킬 때 할례도 유익하다 말했습니다. "롬 2:25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할례만 행해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잘 알고 있는 것처럼 사람이란 존재는 모든 율법을 다 지켜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못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유익할 수 있던 할례는 무익하게 되었습니다. 할례의 유무가 구원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손으로 행하는 할례가 아니라 성령이 행하는 세례가 필요합니다. 에스겔은 새 언약의 모습을 설명하며 하나님이 맑은 물을 뿌려 정결하게 하고 새 영을 주어 자기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 말하였습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이스라엘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할례를 받아야 했지만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의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세례는 할례로 이룰 수 없던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합니다. 성령의 세례를 통해 이전의 삶을 벗어버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율법을 따라 이스라엘 백성으로 자신의 자녀를 키우기 위해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숫자의 의미를 붙이는 게마트리아 용법을 사용했습니다. 1-666까지 숫자에 붙여진 의미는 다양했습니다. 이 숫자들은 단순히 범위와 수량을 표시하는 것을 넘어 기호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숫자 6, 7, 8은 구속의 모습을 잘 보여줍니다. 숫자 6은 하나님이 천지를 만들며 일한 것처럼 구원을 위해 일하는 율법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숫자 7은 하나님이 천지를 만들고 안식한 것처럼 하나님이 만든 세상을 누리는 안식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숫자 8은 1-7로 이어지는 하나의 주기를 넘어 새로운 출발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 속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들이 태어나면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행했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안식 후 첫날 부활하여 새 출발을 보여준 예수님처럼 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음으로 세상과 구별된 하나님의 백성으로 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의 이웃과 친척들은 할례를 받은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로 이름하려 했습니다. 족장시대에 자녀의 이름은 출생과 동시에 주어 졌습니다. (창 21:3, 25:-26) 그런데 후기 랍비 문서를 보면 자녀의 이름이 할례 때 주어졌다 말하고 있습니다. 의학이 발달하지 않은 시대에 갓태어난 아이의 사망이 빈번했기에 일정 기간이 지난 후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녀의 이름은 가족들의 이름을 따라 지어 집니다. 보통 아버지보다 할아버지 혹은 그 위의 조상들의 이름을 따릅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의 이웃과 친척들은 자녀의 이름을 사가랴로 제안했습니다. 존 놀랜드는 주변 사람들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가랴의 괴로움을 위로하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주변 사람들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엘리사벳은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말했습니다. "1:60 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요한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었다'는 뜻으로 가브리엘이 사가랴에게 말해준 이름이었습니다. "1:13 천사가 그에게 이르되 사가랴여 무서워하지 말라 너의 간구함이 들린지라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 엘리사벳은 가브리엘과 사가랴의 대화를 직접 듣지 못했지만 아들의 이름이 요한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지난 시간 살펴본 것처럼 엘리사벳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1:41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 42 큰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넘치는 성령의 인도함으로 엘리사벳은 자신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아들의 이름도 요한이어야 함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요한의 이름을 말하자 이웃과 친척들은 당황했습니다. 친척 중에 요한이란 이름을 가진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1:61 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관습과 전통은 하나님의 계명 만큼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나라를 잃어버린 후 민족적 정체성을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관습과 전통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막 7:8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 9 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 따라서 관습과 전통을 어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처럼 대우를 받았습니다. 모난 돌처럼 정을 맞아 부서지고 사라져야 할 사람처럼 여겼습니다. 엘리사벳은 이러한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엘리사벳의 이웃과 친척들은 엘리사벳을 걱정해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사가랴에게 몸짓으로 의중을 물었습니다. "1:62 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 63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사가랴는 자신의 뜻을 표현하기 위해 서판을 달라 말했습니다. 서판은 작고 평평한 판을 말합니다. 보통은 나무로 만드는데 한 쪽 면에 밀랍을 얇게 한 층을 입힙니다. 짧은 전갈을 전하기 위해 끝이 뾰족한 막대기 또는 철필을 사용하여 밀랍 층에 표시를 하거나 글씨를 썼습니다. 사가랴는 서판에 아들의 이름을 요한이라 썼습니다. 엘리사벳과 사가랴가 같은 이름을 말하자 사람들은 이를 매우 놀랍게 여겼습니다. 비록 관습과 전통에 어긋나는 일이지만 이름을 정하는 일에도 하나님의 특별한 개입이 있다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사가랴의 회복에서 화룡점정을 이룹니다. 가브리엘의 말을 의심하여 말하지 못하게 된 사가랴는 엘리사벳이 출산한 후 가브리엘의 말을 믿어 아들의 이름을 가브리엘이 말한대로 요한이라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의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1:64 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다시 말하게 된 사가랴의 모습은 요한의 할례를 위해 참석한 이웃과 친척들을 통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요한이 앞으로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에 대해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손이 요한과 함께 함이 분명했기 때문입니다. "1:65 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 66 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 // 63 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사십여세로 다른 이의 도움을 받아 성전 미문에서 구걸을 했습니다. 베드로는 성전 미문 앞의 앉은뱅이에게 은과 금은 자신에게 없지만 자신이 가진 것을 주겠다 말하며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했습니다. 베드로가 그의 오른 손을 잡아 일으키니 앉은뱅이의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 걷게 되었습니다. 사십여년 만에 처음으로 걷게 된 앉은뱅이는 그 동안 장애를 가진 몸으로 들어갈 수 없던 성전을 향해 걸었습니다. 사가랴가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며 하나님을 찬송한 것처럼 미문 앞의 앉은뱅이는 걷기도하고 뛰기도하며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성전 안의 사람들은 걷지 못하던 앉은뱅이가 걷고 뛰고 찬양하는 모습에 놀랐습니다. 또한 솔로몬의 행각에 모여 앉은뱅이를 일으킨 베드로와 요한의 말을 듣길 원했습니다. 사십여년 동안 단 한번도 걷지 못하던 앉은뱅이의 치유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었습니다. 말씀을 듣는 중에 남자의 수만 오천 여명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행 4:4 말씀을 들은 사람 중에 믿는 자가 많으니 남자의 수가 약 오천이나 되었더라"

    걷기 전 앉은뱅이는 가장 밑바닥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성전 앞에 있지만 성전에 들어가지 못 했고 먹고 살기 위해 구걸을 해야 했지만 그마저도 다른 이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사십여년을 매우 불행하게 살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삶은 예수님을 만나고 증거하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 안의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면서 걷지 못하던 자가 성전 미문에서 예수님을 만날 수 있도록 그의 삶을 이끌었습니다. 높고 높은 보좌를 떠나 낮고 낮은 이 땅을 찾아온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그의 삶을 낮고 낮은 곳으로 인도한 것입니다. 낮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난 앉은뱅이는 일어선 키보다 큰 더 큰 변화로 예수님의 능력을 세상에 보여주는 자가 되었습니다. 육체의 한계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덮어 저주의 상징에서 축복의 상징이 된 것입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세례자 요한을 낳음으로 저주의 상징에서 축복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레위기 20장은 더러운 일을 행한 자는 그 죄로 인해 자식이 없을 것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사가랴와 엘리사벳은 자녀가 없음으로 이러한 비난 혹은 오해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임신한 후 하나님이 자신의 부끄러움을 없애 주었다고 말한 엘리사벳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엘리사벳에게 자녀 없던 지난 삶은 부끄러움과 수치의 날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가랴는 분향단 앞에서 자녀를 달라 하나님께 기도를 하였습니다. 나이들고 늙었지만 자녀를 향한 소망을 거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가브리엘을 통해 자녀를 낳을 것이라 알려주었고 엘리사벳은 그 말씀대로 임신하고 출산을 하게 되었습니다. 육체의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났습니다. 엘리사벳의 이웃과 친척들은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늙은 나이만큼 괴로웠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을 위로하고 선명하게 드러난 하나님의 긍휼을 찬양해야 했습니다.하나님은 이 순간을 위해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삶을 이끌었습니다. 육체의 한계가 분명할 때 드러나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사가랴와 엘리사벳에게 자녀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기다리는 시간은 괴로웠지만 주변 사람들과 함께 큰 즐거움을 누릴 수 있도록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삶을 인도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과정이 아닌 결과를 바라보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부르며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 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한다 말하였습니다. "렘 1:10 보라 내가 오늘 너를 여러 나라와 여러 왕국 위에 세워 네가 그것들을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고 넘어뜨리며 건설하고 심게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은 새롭게 건설하고 심기 위해 먼저 뽑고 파괴하며 파멸하십니다. 무너지는 과정을 거쳐 새롭게 세워지는 결과를 얻게 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말씀하였습니다. "요 12: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죽는 과정을 겪어야 많은 열매의 결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 언약을 통해 모든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임을 깨닫게 하였습니다. 율법이란 거울 앞에 사람의 민낯을 철저히 드러내 보여주었습니다. 이 과정을 거쳐 하나님은 새 언약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십니다. 한 알의 밀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 교회라는 자기 백성을 많은 열매로 거두었습니다. 율법이란 과정을 거쳐 은혜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모두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기 백성 만들겠다는 결과를 위해 우리의 삶을 이끌고 있습니다. 낮은 곳에 서야만 보이는 예수님을 볼 수 있도록 낮은 곳으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한계가 드러난 곳에 선명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도록 뽑히고 파괴 당하며 파멸하고 넘어지는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고 있습니다. 애벌레가 자신의 죽음을 느꼈을 때 나비가 되는 것처럼 죽음을 통해 생명을 얻는 진리로 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오늘이 아닌 내일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웃과 친척들이 보기에 초라하고 부족하고 손가락질 받을 것 같은 삶이지만 그 마지막은 하나님의 긍휼로 승리하게 됨을 믿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의 승리가 우리의 것이 되는 날까지 이 믿음 굳게 붙들고 살아가는 성도의 삶이 되길 바라며 말씀 맺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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