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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8] 눅 2:1-7 예수님이 머리 둘 곳기독교_ 기독교/누가복음 2023. 6. 12. 09:49SMALL


지난 시간 함께 살펴본 세례자 요한은 아버지의 뒤를 따라 제사장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은 적성이나 능력을 따라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한 레위지파의 혈통을 따라 직분을 받게 됩니다.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아비야 반열의 제사장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은 아론의 자손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제사장이 되기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가 원한다면 성전에 나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은 성전이 아닌 빈들을 선택했습니다. 빈들은 광야와 같은 곳으로 여호수아와 같이 약속의 땅으로 자기 백성을 인도할 예수님을 기다리는 최적의 장소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세례자 요한이 기다리던 예수님의 출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1-2절은 예수님이 태어난 시점을 소개하고 있고 3-5절은 호적을 위해 베들레헴으로 향한 요셉과 마리아의 모습을 보여주며 6-7절은 예수님의 출생을 알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태어남은 극도로 간결하게 나타납니다. 매년 성탄절이 되면 화려하게 장식되는 크리스마스 트리와 거리마다 울려퍼지는 캐롤은 성탄의 기쁨을 표현하지만 정작 예수님의 태어남은 수수하다 못해 초라해 보이며 슬픔이 묻어 납니다. 인류에게 가장 기쁜 날이지만 하나님에겐 자신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을 죽음으로 밀어낸 날이기 때문입니다.
1. 우리 중 하나가 되신 예수님

가이사 아구스도는 자신이 다스리는 나라에 호적을 행하라 명령을 내렸습니다. 일반적으로 호적을 행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군대를 조직하기 위함이고 둘째는 세금을 걷기 위해서 입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기 위해 인구 조사를 명령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은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시리아의 총독 구레뇨에게 전해졌습니다. 누가는 호적을 행하는 일이 구레뇨가 수리아의 총독이 되었을 때 처음 시행되었다고 전함으로 예수님이 태어난 시기를 가늠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로 인해 문제가 생겼습니다. 역사가 요세푸스를 통해 알려진 구레뇨의 통치 시기는 A.D 6~7년경이고 예수님의 출생은 B.C 4년 경으로 둘 사이에는 시간적 차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오히려 예수님의 역사성이 의심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고고학자이며 옥스퍼드와 캠브리지의 교수였던 윌리엄 미첼은 1746년에 발견된 라틴 티부르틴(Tiburtine) 비문에 근거하여 구레뇨의 통치가 연속하지 않은 두 번에 걸쳐 시리아를 통치했다 주장했습니다. 누가가 소개한 역사적 시점에 문제가 없음을 밝혀낸 것입니다.

누가가 전한 예수님의 출생시기는 역사적으로만 아니라 신학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전해 줍니다. 오늘 본문은 '그때에'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이 문장은 헬라어로 ἐν ταῖς ἡμέραις ἐκείναις [엔 타이스 헤메라이스 에케이나이스] 입니다. 그 의미는 '특정한 시기가 되었음'을 말합니다. 누가는 누가복음 4:1, 5:35, 9:36, 21:23과 사도행전 2:18, 7:41, 9:37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이 이루어 질 때 이 문장을 성취의 관점에서 사용하였습니다. 따라서 오늘 본문의 역사적 시점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음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가이사 아구스도의 명령 아래 예수님을 태어나게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뜻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자의 권력 아래 예수님을 나게 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율법 아래 나게 했다 말하였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속량하기 위해 예수님을 율법 아래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갈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 5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음으로 선과 악을 알게 된 모든 사람들은 율법 아래 살아가는 자들 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고 악으로 드러나지 않을 방법이 없습니다. 종일토록 수고하며 땀 흘리지만 영생의 열매를 얻지 못해 결국 흙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합니다. 하나님은 율법 앞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아들을 우리에게 보내주었습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 중 하나가 되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앞에 선으로 드러나고 율법의 요구를 완벽히 지켜 냈습니다.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삶을 살아 율법 아래 살아가는 자들의 대속물이 되었습니다. 죄의 행위는 우리에게 있지만 죄의 값은 예수님이 대신 지불하였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예수님께 내려놓게 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바울은 당당히 말합니다 "고전 15: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 56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 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
2. 오 베들레헴 작은 골

예수님의 아버지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에 살았습니다. 이들은 호적을 하기 위해 조상들의 마을로 가야했습니다. 다윗의 후손이었던 요셉은 다윗의 동네로 알려진 베들레헴에 가야 했습니다. 베들레헴은 다윗이 태어났지만 별 볼일 없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사실 다윗과 관련된 마을은 베들레헴보다 예루살렘이 더 유명합니다. 다윗은 그의 나이 삼십에 왕위에 올라 예루살렘에 거하던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고 시온 산성을 빼앗아 다윗 성으로 불렀습니다. 다윗 성에 살게 된 후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승승장구했습니다. 무려 30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따라서 다윗의 동네는 연약한 모습으로 나고 자랐던 베들레헴보다 강한 모습으로 다스렸던 예루살렘이 더 적절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이 아닌 베들레헴을 다윗의 동네로 불렀습니다. 미가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베들레헴은 유다 족속 중 작은 마을이지만 그곳에서 다윗과 같이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태어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하기 위해 나사렛에서 다윗의 동네였던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요셉은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의 삶을 살았습니다. 요셉은 야곱의 아들들 가운데 가장 높은 위치에 있었지만 집에서는 아버지 야곱이 첫번째 였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요셉은 높은 위치였지만 그 위에 보디발이 있었습니다. 감옥에서도 높은 위치였지만 그 위에 간수장이 있었고 애굽에서 높은 위치였지만 그 위에 바로가 있었습니다. 어디서나 요셉은 첫 번째가 아닌 두 번째였습니다. 또한 요셉은 공급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자신을 애굽에 팔아 넘긴 형들에게 음식을 가져갔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는 가정총무의 일을 했고 감옥에서는 제반 사무를 담당했으며 애굽에선 총리가 되어 나라의 먹거리를 관리했습니다. 어디서나 필요를 공급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요셉이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베들레헴은 떡을 의미하는 단어와 집을 의미하는 단어가 합쳐져 떡집으로 불립니다. 언제나 두번째의 삶을 살았던 공급자 요셉에 떡집에 도착한 것입니다. 떡집에서 요셉이 세상에 공급할 떡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생명의 떡이라 말씀하였습니다. 과거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자신을 먹는 자는 죽지 아니할 것이라 말씀하였습니다. "요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 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셉을 통해 세상에 공급 될 예수님은 마리아에 꼭 필요한 분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모압에서 남편과 두 아들을 잃고 자신이 살던 베들레헴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때 나오미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자신을 나오미가 아닌 마라로 부르라 말하였습니다. 마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후 사흘 길을 걸었으나 물을 찾지 못 했을 때 마신 쓴 물을 말합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라를 잃은 후 자신의 괴로움을 표현하기 위해 나오미와 같이 딸들의 이름을 쓴물의 뜻을 가진 헬라어 '마리아'로 이름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쓴 물이 단물이 되어 마실 물을 얻길 원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떡집의 예수님은 생명의 떡만 아니라 생명의 음료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신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그를 다시 살린다 말씀하였습니다. "요 6:5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따라서 요셉과 마리아의 베들레헴 방문은 호적을 넘어 예수님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바라보게 합니다. 약속대로 참된 양식과 참된 음료를 공급하는 하나님의 계획을 깨닫게 합니다.
3. 머리 둘 곳 없는 예수님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은 직선 거리로 170km입니다. 갈릴리를 돌아 여리고와 예루살렘을 거쳐 베들레헴으로 가려면 230km는 걸어야 합니다. 건강한 성인의 걸음으로 대략 10일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런데 요셉은 그 길을 출산이 가까운 마리아와 함께 했습니다. 만삭이 된 마리아를 홀로 나사렛에 남겨 둘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는 오늘 본문 5절에 의하면 요셉과 결혼하기 전입니다. 유대인의 전통에 결혼하기 전 여자가 임신하면 돌에 맞아 죽습니다. 살아남더라도 부정한 여인이란 비난에 시달리게 됩니다. 누구보다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던 요셉은 마리아를 보호하기 위해 결혼하기 전임에도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이 태어날 때까지 마리아를 지켜주었습니다.

물론 만삭인 마리아와 함께 하는 길은 더딜 수 밖에 없었습니다. 호적을 위해 고향을 찾은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모든 숙소는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요셉과 마리아는 보편적인 숙소가 아니라 짐승이 머무는 공간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전형적인 집 구조는 4개의 방을 가진 형태입니다. 각 방은 각자의 역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경제적 상황을 고려해 방의 갯수가 늘어나도 방의 역할은 4개로 제한됩니다. 방의 갯수보다 방의 역할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종종 이스라엘의 집은 복층 건물의 형태로 가나안 지역에서 발견됩니다. 역시 4개의 방을 가진 구조로 아래 층은 짐승을 키우던 마굿간으로 활용하고 위 층은 거주 공간으로 사용했습니다. 아래 층에 마굿간을 만든 것은 우기에 난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나라의 구들장 만큼은 아니지만 짐승의 체온으로 좀 더 따뜻하게 겨울을 지낼 수 있습니다. 가난해 4개의 방으로 집을 만들 수 없는 자들은 자연동굴을 활용해 집을 지었습니다. 짐승이 머무는 자연동굴 위에 3개의 방을 가진 주거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숙소를 구하지 못한 요셉과 마리아는 바로 이러한 집에 머물렀습니다.

변증가 유스티누스(Justinus)는 155년에 저술한 《트리폰과의 대화》에서 요셉과 마리아가 마을 근처 동굴에서 예수님을 낳았다 말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의 오리게네스도 2세기에 기록된 《켈수스에 반대하며》, 제1권 제1장에서 "베들레헴의 동굴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동방에서 온 박사들은 강보에 싸인 아기 예수님이 있던 동굴 안에 들어갔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라 이곳이야말로 그리스도인들이 경배하며 흠숭하는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동굴이라고 참으로 믿어지고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동굴에서 태어난 예수님은 구유에 누우셨습니다. 구유는 헬라어로 φάτνῃ [파트네]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구유라는 뜻도 있지만 마굿간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마굿간에서 태어났다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누가가 φάτνῃ [파트네] 라는 단어를 사용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예수님이 낮고 낮은 곳으로 내려왔다는 것입니다. 구유는 짐승이 머무는 곳에서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높고 높은 보좌를 떠나 낮고 낮은 이 땅에 내려왔습니다.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의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내려온 이유는 7절에서 말하는 '첫아들'이란 표현을 통해 깨달을 수 있습니다. 유월절을 앞두고 하나님은 이스라엘 자손 중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리라 말씀하였습니다. 처음 것은 모두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13: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이 땅에 태어난 예수님은 요셉과 마리아의 첫아들이었지만 동시에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첫 아들이기도 합니다.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려질 분으로 예수님이 태어난 것입니다. 십자가 사건은 하나님께 돌려짐이 어떠한 것 인가를 잘 보여 줍니다. 애굽의 처음 난 것들이 죽임을 당함으로 이스라엘의 처음 난 것들을 죽임을 피해 출애굽한 것처럼 첫아들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인들이 죄를 대속 받아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일을 위해 첫아들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살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죽기 위해 태어난 것입니다.

죽기 위해 태어난 예수님을 위한 자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는 예수님이 구유에 태어난 이유를 밝히며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다 말하였습니다. 이때의 거절은 요셉과 마리아를 향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향해 머물 곳이 없다 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말씀하였습니다. "눅 9: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하시고" 기적과 이적을 행하는 예수님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자신을 의탁하지 않았습니다. "요 2: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 24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교회만이 예수님을 담을 수 있습니다. "골 1:8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그가 근본이시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이시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다윗은 화려하게 장식된 자신의 궁전에 거하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휘장에 머무는 것을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짓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나님이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말씀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집 성전은 다윗이 죽은 후 그의 씨 곧 다윗의 아들 중 하나가 지을 것이라 말하였고 성전이 지어지면 그의 나라와 왕위를 영원히 견고히 할 것이라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에 의해 성취되는 듯 했습니다. 성전이 지어졌고 이스라엘은 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누어졌습니다. 시간이 흘러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 당했고 남유다는 바벨론에 멸망 당했습니다. 솔로몬이 지은 성전과 함께 나라와 왕위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 생각했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심기일전의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에서 돌아와 다시 성전을 지었습니다. 다시 성전이 회복되면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나라와 왕위가 영원히 견고해 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두 번째 성전이 큰 어려움 가운데 완공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대와 달리 이번에도 나라와 왕위가 영원히 견고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이스라엘은 다른 나라의 지배 아래 고통 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고통이 더 해질때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열심히 성전을 찾아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성전에서 행하는 자신의 수고와 노력이 하나님을 만족시켜 다윗에게 약속한 나라와 왕위가 영원히 견고해지는 일이 일어나길 바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의 모든 기대가 성전으로 향해 있을 때 예수님은 "성전을 헐면 사흘 동안 일으키겠다" 말씀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 했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된 자신의 육체를 가리키 말씀하였기 때문입니다. "요 2:19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 20 유대인들이 이르되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 하더라 // 21 그러나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은 성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던 장소가 예수님으로 우리를 찾아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이 예배의 장소를 물었을 때 그리심산도 예배의 장소가 아니고 예루살렘도 예배의 장소가 아니라 말씀하였습니다. 그림자처럼 주어진 성전이 예수님을 몸으로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요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 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은 시편 118편 22절에서 건축가 버린 돌이 모퉁이 돌이 되었다는 말을 따라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되었습니다. 교회로 부름 받은 성도는 모퉁이 돌이 된 예수님 안에 머물러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해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 갑니다. "엡 2:20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 21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 22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성전을 찾던 자가 성전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나 성전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머물던 건물이 성령을 통해 우리 안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로 부름 받은 우리는 하나님이 머무는 성전이 우리 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성전이 거룩한 것처럼 우리도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 17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예수님은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우리에게 다시 오겠다 말씀하였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은 크고 화려한 건물로 임하지 않습니다. 머리 된 예수님을 담는 몸 된 교회를 찾아 이 땅에 다시 오십니다. 머리 된 예수님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면 이 보다 더 큰 사랑이 없다 말씀하신 후 십자가에서 가장 큰 사랑을 보여줬습니다. 이웃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하라 말씀하신 후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자신의 죄로 여겨 죄의 값을 대신 지불하였습니다. 일곱번씩 일흔 번 용서하라 말씀하신 후 우리의 허다한 죄를 사랑으로 덮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의 머리 됨으로 몸으로 부름 받은 교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머리 된 예수님의 사랑안에서 머리가 행한 일을 하는 몸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마디 마디가 연결되어 하나의 몸이 된 것처럼 모든 성도가 예수님이 행한 일을 행함으로 서로 연결되어 그리스도의 몸으로 자라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 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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